우리는 서로가 다르다는 개념으로 서로를 짓밟아 왔다. 종교가 다르며,
인종이 다르며, 나라가 다르며, 사는 곳이 다르며, 먹고 입는 것이 다르다며 서로가 틀리다
고 짓밟으려 한다. 다르다는 개념이 우열을 가르는 것이 아니며,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닌데도 서로를 죽이고 있다. 미노타우로스는 서로 다르며 닮은 우리의 본성과 슬픔을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다르다는 개념을 가장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발전시켰
던 종교적 관점에서 더욱 모순적으로 드러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의 이웃은 네 종교를
믿는 자이며, 한 쪽 뺨을 맞으면 죽음으로 묻는 것이 종교의 실태다. 모순의 어원처럼
가장 강력한 방패와 창을 양 손에 쥐고서 서로 다른 종교를 틀린 것이라 하며 공격하고
있다. 종교가 사랑과 전쟁을 꼭 껴안고 있는 모순처럼 세상은 모와 순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모순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의 사유를 희망하는 것이다.
나는 미노타우로스가 느끼는 분열적인 정체성에 주목한다.
인간도 아니며, 짐승도 아닌... 이 괴물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
인간은 사회 속에서의 이성과 동물의 본능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분열적 자아를
갖기 마련이다. 또한 개인과 사회로 대립되는 세상의 틈새 사이에서 자아를 찾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이성과 본능, 실재와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는 우리는 미노타
우로스를 닮았다. 인간도, 짐승도 될 수 없는 미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소외된
정체성의 산물이자 분열된 자아 속에서 고뇌하는 존재인 것이다.
『미노타우로스(Minotauros)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암흑이었지만 그는 미로(迷路)구석구석
을 보고 있었다. 그의 세상은 벽과 벽, 어둠과 심연(深淵), 그리고 본능(本能)으로 이루어졌
다.
첫 번째 제물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다섯 번째......
...네 번째 제물을 먹은 후 외롭고 괴로웠었다.
...어머니가 생각난다…
다섯 번째 소녀는 아름다웠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사랑스러웠다.
… 아홉 번째 소녀를 먹은 후론 정말이지 괴로웠다.
:
그녀의 얼굴이 떠나질 않는다.
그녀는 두려워하면서도 나의 몰골을 보고선 기꺼이 먹으라 했다.
나는 온몸이 메말라 기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본능이 나를 집어삼키고 그녀를 앗아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자신의 슬픔이 아니라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
피노키오 시뮬라시옹
‘종교의 가장 큰 유혹은 불멸이다. 또한 과학도 불멸을 꿈꾼다.’
이상과 실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헤매고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가장 느리게 숨가쁘게
하는 건 무얼까? 본인은 종교의 틈새에 표류하는 사회를 시뮬라크르의 관점에서 뒤돌아
보는 계획을 짠다. 또한 시뮬라르크를 통해 과학적 진화의 당위성을 변명하고자 한다.
허구의 상징으로 카톨릭 사제복을 입은 피노키오를 선택하고 과잉 실재적인 현상이
종교와 연관된 고리를 찾아내려 한다. 동시에 인간이 되는 피노키오 얘기 속에서 자유의지
와 사고체계를 드러내는 자동 인형으로서의 피노키오를 발견하고 과학적 진화와 함께
로봇의 인간화 과정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허구적 얘기 속
에서 피노키오를 박제(剝製)사로 규정하고 창조자인 제페토를 박제하는 얘기를 통해 시뮬
라크르의 변이와 초월자의 얘기를 이끌어 내려 한다. 유일신 종교에서-사회적 동물로서의
집단화 과정에서 필연적인- 야기되는 부정적 사고를 제거하고 그 틀에 의문을 제기하며
방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사제복의 피노키오와 너무나 성숙한 소녀
피노키오는 박제된 제페토와 너무나 빨리 진화하는 소녀를 사랑한다고 말했지. “……”
조합토, 테라 시질라타, 고화도 안료, 투명유, 금유, 그릇, 썩은 장미, 버려진 가구, 철
『피노키오는 세상 어떤 것도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박제하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
그 기술이 최고에 달했을 때 그는 황금뿔 사슴을 찾아 헤매었지.
황금뿔 사슴을 만났을 때 피노키오는 물었어.
“너는 영원히 살고 싶지 않니?”
:
황금뿔 사슴이 대답했지.
“내 이름을 영원히 기억해 준다면……”
피노키오는 최고의 기술로 황금뿔 사슴을 박제하기 시작했어. 완성됐을 때
그는 너무나 빨리 진화하는 소녀를 찾아가 선물 하며…… 사랑한다 말했지.
소녀가 물었어.
“황금뿔 사슴의 이름은……?”
:
:
“제페토.”』
가톨릭 사제복을 입은 피노키오는 자동인형인 동시에 창조자로서 박제사다. 더불어
동화에서 인간이 되는, 현상을 초월하는 초월자로서 존재한다.
이런 초월자가 되기까지 거짓 존재로서 허구를 상징하는, 현실과 격리된 존재로 있으며,
거짓말을 통해 코가 늘어나는 사회적 틀 안의 형벌적 의미 체계로서 작동한다.
본인의 피노키오는 붉은색(추기경의 색이 아닌) 가톨릭 제의를 입고서 실재화된 종교의
허구를 지적하고 그 벌로써 코가 길어지는 형벌을 받는다.
원시 유일신 종교에서부터 선교의 가장 큰 요소는 설법과 필사본 체계였으며 여기엔
전달자의 허구와 번역의 오류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원본과는 다른 하지만 원본인 것처럼 꾸미는 시스템의 발전이 있었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추구하고 시스템을 확립시킨 유일신의 개념을 근거 없는 실재가 실재를 대치하는
시뮬라크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절대신의 개념에 있어서 사람들의 사고에서 인지되는
유일신은 전달 방식에 따라-이야기든, 우상이든- 각자의 상상력에 의해 시뮬라크르 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같은 신이라 믿지만, 엄연히 각자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신이
다르며, 이것은 유일신의 개념에서 이미 유일하지 않으며 다신적 의미에서 절대신의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처음 시작된 종교적 의미와 현상과는 다르게 현실의 종교적 의미와 유일신들은 수많은
시뮬라시옹에 의한 허구이자 현실에서 강력한 존재력을 갖게 되는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그리고 본능과 본성의 의미체계로서 성숙한 소녀를 대치시킨다. 독신의 상징인 로만
컬러의 신부와 성숙한 몸에 어린 소녀의 얼굴을 함께 갖고 있는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성적 욕망의 본능을 표현한다. 신부와 소녀는 본능적 욕망을 함께 할 수 없지만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인 것이다. 동시에 소녀의 성장에 대한 바람은 사회적 동경과 실지로
이루어지고 있는 먹거리에 대한 진화이다. 또한 동안에 대한 동경은 늙고 싶지 않은
일종의 불사, 불멸의 욕구의 발로이다. 어리고 싶은 욕구의, 불사의 욕망과 성적주체로서
빨리 성장하고픈 본능의 대치 국면이다.
초월자 피노키오
원작에서 파란 요정의 능력으로 사람이 되는 피노키오는 요정의 개념을 배제하면
초월자의 위치에 합당하다. 정신적 사고체계를 우선 제켜 놓는다면 무기체에서 유기체로
바뀐 기나긴 진화의 압축 판이다. 물론 물리적 현상을 넘어서는 요정의 존재가 신의
힘으로 상징화 되긴 하지만 본인은 과학적 진화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미래 현실화되는
사실로 받아들인다. 자동인형으로의 피노키오는 로봇이 머지 않아 자유사고를 갖게
되리라는 과학의 미래를 예언한다. 무기체이냐 유기체이냐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특히
인간이 되는 시점에서 복사본이라는 일종의 허구는 완벽한 현실이 되며 진짜가 된다.
시뮬라크르가 완벽해 지는 것이다.
피노키오 박제사 되다
본인의 동화에서 피노키오를 박제사로 설정한 것은 박제 자체가 시뮬라크르의 요소인
동시에 채워지지 않는 욕망–박제된 대상을 실제로 인식하진 않지만 상상한다-의 대상이
되며, 잉여 욕망을 낳고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기술이 최고에
달했을 때-이것은 실제화 시킬 수 있는, 원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기술이다-그가
찾아 헤맨 희생물인 황금뿔 사슴의 이름을 ‘제페토’로 설정하면서 피조물에서 창조자의
위치 바꿈과 동시에 창조자를 살해하는 사고 전복의 대리자로서 작동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이것은 아버지의 존재와 경쟁하지만 생물학적인 틀을 깨는 장치이며,
오히려 창조자를 재창조하는 시뮬라크르의 변이이다. 관습적 사고를 살해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초월자로 선정되는 것이다.
피노키오 시뮬라시옹을 통해 말하고픈 것은 공각기동대에서 말하는, 틀을 벗어난 완전한
자유를 상징하는 네트워크로의 탈출보다는 오히려 초월자로서의 창조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도가에서 무위자연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직업에서 수련의 정점에 서는걸 그
방법으로 제시한 것처럼 현재의 세상은 수련의 방법과 고찰에서 정점에 다다른 과정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단순한 자유의 환상에서 벗어나 일종의 해탈과 비슷한 새로운
유토피아를 설정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지극한 개인주의의 정점인 해탈의
개념을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과학의 힘으로 동시에 성취할 수도 있다고 여기며,
그 위치에 서게 됐을 때 완전한 소통을 이룰 수도 있다고 또한 희망한다. 그 동안의 유토
피아가 어쨌든 지금의 현실을 낳았다고 보고 새로운 개념의 유토피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학이 욕망의 결정체라면 욕망의 끝에서는 사로잡힐 수도 있지만 혹은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만연한 부정적 견해와 증거가 산재하고 본인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긍정론
이라고 치부되겠지만 지금이 과학적인 시점에서 진화와 도태의 시작이라고 본다.
종교의 가장 큰 유혹은 불멸이다. 불멸은 과학의 힘으로 이루어내고 있다 하지만 과학은
분명히 종교와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다. 과학적 견지가 오류의 수정을 인정하는 자세가
토대에 놓여졌다면, 종교적 입장은 무조건적인 믿음에서 기인한다. 나는 무조건이 싫은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틀에서 모두 벗어난 나의 유토피아가 있다. 사람들은 현재를
무협지에서 말하는 주화입마(走火入魔)로만 얘기하지만 나는 주화입마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오기조원(五氣朝元)에 초점을 맞춘다. 시뮬라크르 된 유일신은 서로를 침범하지만
시뮬라크르 된 피노키오는 과학적 해탈의 경지에 다가갈 지도 모른다. 그곳은 새로운
유토피아다.
섬 : 그 거리 - Great Minotauros
사람들은 각기 하나의 섬으로서 바다 위에 서 있다. 완전한 독립과 무결한 교집합을
꿈꾸는 시절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면서, 또한 나약해지면서 그 거리는 점점
멀어져간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충동 속에서 Minotauros가 되어 간다. 죽음으로
항해하며 이상과 실재 사이에 표류한다. 바다는 늪이 되고 실존의 색깔 또한 투명해져 간다.
하지만... Great Minotauros가 탄생하면, 바다는 고유의 생명을 잃지 않는 대지가 된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바다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완전한 독립과 무결한 교집합의 공존과 완성.
섬, 그 거리를 호흡하는… 징검다리
섬, 그 거리를 호흡하는… 징검다리
섬은 각기 독립된 고유한 주체이며 동시에 서로가 매개체인 존재.
서로 다가갈 수 없는 고유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로를 어길 경우 존재하지 않는 징검다리.
섬으로 이뤄진 징검다리는 다양한 주체를 소통하는 또 하나의 주체이다.
실재하면서도 누구도 인식할 수 있는 허상.
부분으로 존재하는 섬 하나하나는 단지 홀로된 자아가 아닌, 버려지는 일 없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 아닌 전체의 또 다른 전체를 이룬다.
각기 고유한 주체는 징검다리를 이루는 순간 소통할 수 있는 그 거리를 유지한다.
서로를 망각할 정도로 너무 멀지도 않고, 또한 자아를 훼손하지도 않는 중용의 그 거리.
하나의 독립된 전체이자 서로가 호흡하는 하나.
하나로 호흡하는, 단절되지 않는 흐름을 가진 또 하나의 전체.
그 자체로 이쪽과 저쪽을 내달리는 끊기지 않는 흐름.
이곳이 시작이며 저곳이 시작인 소통을 이루는 하나 들이자 또 하나의 고유한 하나.
서로를 호흡하는 하나.
섬은 독립된 것처럼 보여지지만 하늘과 바다, 그리고 우리를 매개로 하며
서로를 아우르고 있는 흐름의 전체. 그리고 징검다리…
난삽한 우상偶像 과 딩검리 섬
딩검 리- ‘징검다리’의 옛말
사람들은 각자의 고유한 우상을 키우고 있으며 세상은 갖가지 우상들로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이 우상들은 선입관념으로 뭉쳐진 심상과 편견의 투영물일 때가 많다. 각자는
퇴화된 우상숭배偶像崇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서로가 스며들지 않는 존재인 우상들은
고여있는 존재이다. 세상의 종교적 우상이나 ‘미미’와 ‘라라’까지 우상 자체는 각자의
문화와 교접한 존재들인데도 불구하고 지극히 자신만의 고인 생각들로 닫힌 상태로 정의
내리고 있다. 문화 혼융의 결과물임에도 인식하지 못하고 홀로 서 있는 모습이다.
분명 교류하지만 변화가 대단히 느리고, 갇힌 공간에서 특별하게 진화하는 양태를
보인다.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배타적이며 닫힌 공간으로 인식되는 섬의
성격과 부합한다. 그리고 골목길 마다 있는 주차금지의 표지물도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표시하며 외부존재들의 접근을 금지하는 면에서 섬 적인 존재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섬은 동시에 열린 상태를 희망하며 일탈을 희망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양면성을
징검다리의 개념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우상들과 주차표지를 모티프로 제작한 조형물을
징검다리의 부분들로 정의내림으로써 섬 하나하나는 단지 홀로된 자아가 아닌, 버려지는
일 없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 아닌 전체의 또 다른 전체를 이룬다. 각기 고유한 주체는
징검다리를 이루는 순간 소통할 수 있는 그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징검다리는
건널 수 없는 공간을 매개하는, 이동성 그 자체를 상징하며 열린 세계를 꿈꾸는 희망을
보여준다.